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역방향의 정책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는 빠르게 하나로 통합되는 흐름을 보여왔다.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 확대는 많은 국가에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었고, 다국적 기업들은 저렴한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생산기지를 옮겼다. 그러나 이런 세계화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특히 미국의 제조업 근로자와 일부 지역 경제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미국 내에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는 보호무역주의의 목소리가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다. 그는 2016년 대선 캠페인부터 일관되게 "공정무역(Fair Trade)"과 "미국 산업 보호"를 내세우며, 기존의 자유무역 체제를 비판했다. 특히 그는 관세를 활용한 무역전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이는 이전 미국 정부들과는 전혀 다른 노선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큰 충격을 안겼고, 지금까지도 그 여파는 남아 있다. 이 시간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추진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시행되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 중국과의 무역전쟁
세계 최대 경제전쟁의 서막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상징적인 관세 정책은 바로 중국과의 무역전쟁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오랜 기간 미국의 기술을 도용하고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적재산권 침해, 보조금 지급, 강제 기술 이전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을 '경제 침략자'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2018년부터 미국은 단계적으로 수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농산물, 자동차, 항공기 부문이 주요 타깃이 되었다. 그 결과, 양국 모두 경제적 피해를 입었지만, 글로벌 공급망에 더 큰 타격이 갔다. 기업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와 고용을 줄였고, 세계 경제 성장률도 둔화되기 시작했다. 미국 소비자들도 중국산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 무역전쟁은 단순한 경제 분쟁을 넘어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후 바이든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도 상당수 트럼프의 대중 관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반도체와 핵심 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강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일시적 조치가 아닌 장기적인 전략 변화의 일부였음을 시사한다.
2.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국가 안보’ 명분의 보호무역 트럼프는 관세를 단순한 경제 도구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로 연결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관세 정책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였다. 그는 미국의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군수 물자 생산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이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수입 철강에는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 조치는 동맹국들마저 놀라게 했다. 캐나다, 유럽연합, 한국, 일본 등 오랜 동맹국들 역시 관세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모양새를 보였고, 여러 나라들은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도 했다. 동시에 보복관세가 이어지며 미국의 수출기업들도 피해를 입게 되었다. 특히 자동차와 기계 부문이 타격을 받았다. 다만 이 조치는 미국 내 철강 산업에는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몇몇 철강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고 고용을 확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수입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 전체에는 부담이 가중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특정 산업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전체 경제에는 부담이 더 컸던 것이다.
3. 국내 정치와 경제에 미친 영향
정치적 효과는 경제적 부담 위에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국내 정치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관세 정책을 통해 중서부 산업지대를 중심으로 한 '러스트 벨트(Rust Belt)'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실제로 2016년 대선에서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 지역을 공략해 승리를 거두었다. 관세는 이러한 지역의 제조업 일자리 회복을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공존한다. 일부 산업은 보호를 받아 수익성이 향상되었지만, 다른 산업이나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과 보복관세로 인해 손해를 봤다. 특히 농민들은 중국의 보복관세로 인해 수출길이 막히며 큰 타격을 입었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미국 재정에도 부담을 주었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내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보호를 받은 산업과 피해를 본 산업 간의 격차가 커졌고, 지역 간 경제 격차도 확대되었다. 또, 이러한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중국 외 지역으로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보호무역의 실험, 그 후의 과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분명히 미국 역사상 보기 드문 대규모 보호무역 실험이었다. 그가 취한 조치들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특정 산업과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경제 효율성과 세계무역 질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남겼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 속에서 단일국가 중심의 관세 정책은 생각보다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미국 정치에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경제도 정치다"라는 점이다. 대외경제정책이 단순히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유권자의 정서와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트럼프는 증명했다. 이는 이후 미국 행정부에도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그 기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정책의 부작용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는 무역질서의 재편과 글로벌 협력의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