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하고 지식 기반 경제가 중심이 된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사람’과 ‘정보’로 압축됩니다. 특히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AI, 방산, 자동차 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는 단 하나의 설계도면, 제조공정, 알고리즘 유출만으로 수년간의 연구 성과와 막대한 자산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산업스파이는 더 이상 영화나 소설 속의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위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매년 산업기술 유출 사건이 적발되고 있으며, 이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국가 전략기술까지 포함하는 범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산업스파이들은 기업 내부의 직원, 퇴직자, 협력사 인력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술을 유출하며, 일부는 해외로 넘어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기술 개발만큼이나 기술 보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 시간에서는 산업스파이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들을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내부 인력 보안 관리 강화
산업기술 유출 사건의 대부분은 외부 해커보다 내부 인력을 통해 발생합니다. 즉, 직원이나 퇴직자, 협력업체 인원이 기술 자료를 유출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기업의 보안 대책은 단순한 IT 보안이 아니라 인사관리와 윤리교육을 포함한 통합 전략이어야 합니다. 먼저, 기술 인력에 대한 등급별 접근 권한 제한이 필요합니다. 모든 직원이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구조는 매우 위험합니다. 기술의 중요도에 따라 문서, 파일, 장비 접근을 통제하고, 사용 기록을 실시간으로 기록하여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추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퇴직자나 계약 종료자에 대한 보안서약 및 사후 추적 체계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에 대한 보안의식 교육입니다. 기술 유출이 단지 법적 문제를 넘어 기업과 동료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내부 고발 시스템을 마련하여 의심스러운 행동이 있을 때 익명 신고가 가능하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디지털 보안 시스템의 실효성 확보
오늘날 기술은 대부분 디지털화되어 있으며, 산업기술 역시 이메일, 클라우드, USB 저장소, 협업 플랫폼 등을 통해 손쉽게 복제 및 유출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 물리적인 감시보다 디지털 보안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보안 설루션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은 우선 보안 설루션을 자산이 아니라 운영 체계로 내재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문서 자동 암호화 시스템(DRM), USB 사용 제한, 이메일 모니터링, 클라우드 접근 로그 기록 등은 보안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실제로 일상 업무 속에서 불편하지 않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무 복잡하거나 느리면 직원들이 우회 방법을 찾게 되고, 이는 보안 허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AI 기반 행위 분석 시스템(UEBA)을 통해 이상행동을 실시간 감지하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평소와 다르게 대량의 문서를 외부로 발송하거나, 심야 시간에 외부 저장 장치를 사용하는 등의 행동을 탐지하고 자동 알림을 보내는 시스템입니다. 디지털 보안은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함께, 사내 보안팀과 IT부서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3. 법적·제도적 대응과 산업 전반의 경각심
기업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법적·제도적 보호가 필수적입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영업비밀 보호 관련 법률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피해 입증이 어렵고 처벌 수위도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 유출범이 처벌을 감수하고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허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형량 강화와 피해 입증을 위한 전문조사기관 확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기술 탈취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은 증거 수집과 법적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조사 지원, 무료 법률 자문 등의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퇴직자나 협력업체 간 정보 공유에 있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 비공개 계약(NDA) 체결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제재 수단을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반에 ‘기술 보호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일반인들은 산업스파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기술 유출을 단순 이직이나 정당한 협업 행위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업과 언론, 교육기관이 함께 기술 보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청렴하고 투명한 산업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산업스파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범죄이지만, 그 피해는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며,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한국에게 기술 유출은 단순한 기업 손실이 아니라 국가 미래 경쟁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술 보호는 민감하고 전략적인 과제입니다. 기업은 기술 개발과 동시에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인력 보안, 디지털 보안, 법적 보호의 3박자를 갖춘 종합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단기적 대응이 아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아울러 전 국민적 인식 제고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더해질 때, 우리는 산업스파이로부터 우리 기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기업의 기술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된 기업과 사회만이, 이 조용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